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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어 부스럼
나의 아들은 고교시절부터 아토피로 고생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속을 썩이고 있다. 가끔 전화할 때면 “가려운 피부는 좀 견딜만하냐?”고 꼭 묻는다.
그 좋던 피부가 피가 날정도로 문지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딱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시험을 앞둔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인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것인가.... 별의별 추측을 다해보았다. 병원에도 다니고 한약도 써보고 뜸도 떠보고 좋다는 것은 다 해보는데 별무신통이다.
그러던 차에 운전 중 피부과 전문의 강의를 잠시 듣게 되었는데 귀가 번쩍 뜨였다. 우리 몸의 세포와 병균의 역학관계, 특히 우리가 대처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서
병균들도 반응하고 보복 대응한다는 사실을 아토피 질병과 연계하여 설명할 때는 놀라움을 넘어서서 신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 강의를 듣고 즉시 집에 돌아와서 글 한편 써서 아들에게 참고 하라고 보내주었다.
아토피는 흔히 음식 때문에 생긴다고 여기는데 미신적 속설이란다.
그것은 오히려 지나친 청결문화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사람은 아토피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토피 피부병은 근래에 와서 급격히 생겼났다고 한다.
우리 몸에는 100조의 세포가 있는데, 병균은 10조나 된다.
병균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는가?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쳥결하게 하려고 요란을 피우고, 내 몸이 도를 넘어선 조치를 취하면 내 몸 안의 병균은 이에 대항, 보복하기 위해서 아토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네가 그렇게 과민반응하냐? 알았어! 한번 맛 좀 봐라....”는 식으로 보복대응 한다는 것이다.
10사람 가운데 9은 괜찮은데 유독 왜 나만 피부가 가려운가?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지 말라. 과민반응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긁어 부스럼인 셈이다.
그러니까 아토피를 물리치려면 역순(逆順)으로 하라고 충고한다.
일상생활에서 너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
아무거나 가리지 말고 먹어라.
가려워도 긁지 말라. 피가 나도록 긁어야 하는데 이는 쾌락 때문이다.
피부가 가려워도 긁지 않고 참을 수 있어야 나을 수 있다.
어린아이는 3일 정도만 안 긁어도 금방 좋아진다.
어른은 대략 3개월만 긁지 않으면 저절로 낫는다.
지저분하게 사는 연습을 하라. 샤워는 2-3일에 한번 만 하라.
털 부분만 비누칠 하고 나머지는 비누칠 하지 말고 베이비 오일을 바르라.
너무 청결하게 하면 병균이 보복반응 한다는 것,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 삶 속에서 싫어하는 일들, 원치 않는 일들, 병균이 옮는 것 같은 혐오스런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을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이런 것들을 기피하고 반응하면 그것이 아토피처럼 역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 그저 덤덤하게, 무난하게 다 받아주고 용납하고, 너무 지나치게 신경질 적으로 과민반응하지 말라.
내가 젊은 시절 목회할 때, 지나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어떤 분을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적이 있다. 그는 성격이 깔끔하다 못해 도를 넘어설 정도로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젊어서 이혼하여 노인이 되도록 두 아들을 키웠는데, 자신의 윤리 도덕적 허물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괴로와만 했고,
양심의 고통을 호소했다. 그것은 하나님도 원치 않는 것이고, 진실로 죄의 용서를 구했으면 이제는 사죄의 은총을 믿고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영혼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채 자승자박 상태로 숨져야 했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까다로운 성격을 가지기 보다는 차라리 털털한 성격을 가졌으면 더 좋았을 텐데...했다.
선인장을 보고 누가 쓴 글이다.
‘사막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꾸어라
생존은 우주의 무게 같은 거룩한 의무
푸른 잎이 회색 가시가 되어도
잘 뻗은 몸이 퉁퉁한 물통이 되어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그 잘난 자존심보다 신성한 것
불타는 태양을 이기고 모래밭 대지에 살아남은 너
생명의 찬란한 푸르름이여’
불평불만은 부적응한 현실에 대한 자기감정을 정당화하는 부정적 자기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불평불만이 자주 생길 때에는 현실을 고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도 바꾸어야 할 그 무슨 현실이 남아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리할 각오가 없다면 인내하거나 조용히 피하는 편이 낫다.
만일 이렇게 물러 설 수 없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기도하며 변화시켜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오늘도 새로워질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저 드넓은 바다는 오늘도 덤덤하게 모든 더러운 것들도 다 받아주고 정화시켜서 살게 하지 않던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거나 목숨걸지 말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은 그냥 넘어가라. 다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크게 생각하고 내 속에서 녹여 소화해 내라.
그러면 병균들도 피해갈 것이다.
하늘의 영적 이치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긁어 부스럼인 셈이다.
초연하고 그러려니 하고 견디고 넘어갈 것은 넘어가라.
그러면 마귀도 미쳐 날뛰지 못하고 잠잠해질 것이다.
* 내가 영적인 하비루가 되어 있을 때
주님께서는 ‘이제’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라는 음성이 들려져야 한다.
이제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들려진다(창22:12-18. 마4:19-22).
* 출애굽은 단순히 애굽에서 나오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현하려 가는 길이다.
애굽에서 나오는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더 중요했다.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 말씀을 받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것,
이것이 출애굽 사건의 핵심이다(출5:1 출7:16).
* 이스라엘은 그동안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시내 산에서 직접 뵈옵고 그분과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의 말씀이 율법이다.
시내산 계약법은 가나안에 세워질
하나님 나라의 모형의 법이다(출19:3-25).
* 좋은 것은 누구나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상적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지금 여기서 보여주어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눈으로 확인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라는 것이다(마5:13-16 롬13:8-14).
* 우문우답(愚問愚答) 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에는 대답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구원을 믿음으로 받느냐 행위로 받느냐? 라고 묻는 것은
물음 자체가 잘못되었다.
믿음과 행위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어있고
진정한 행동은 믿음에서 비롯된다(약2:14-24).
◆ 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특별한 의미의 삶과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제게 간증 설교할 기회를
주시면 기꺼이 제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숨\' 산문집 1권을 구매해 주시면 1권이 사랑의 선물로
전국 교도소, 군, 경찰, 학원, 병원에 님의 이름으로 기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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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교회 010-9059-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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