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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농흉을 고치신 치유의 손길(김달성 목사님의 치유간증)
나는 오늘 이 가운데 현신애 권사님의 신유의 안수기도를 받고 병 고침 받은 특별한 한 분을 소개해 올리고자 한다.
아래의 간증 글을 주의 깊게 읽으시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신유의 은혜와 영적인 현상들을 깊이 깨닫게 되고 성령의 감동이 더욱 깊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치의 병으로 고통하시는 이웃의 많은 분들에게 이 간증을 알려주셔서 도전받게 해주시고 실질적으로 병에서 놓임 받는 기쁨이 있도록 기도와 간구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김달성 목사님(평안교회 담임목사) 약력: 1955년 태어나 청주에서 성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예수를 영접. 의대 재학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전공을 신학으로 바꿈. 감리교신학대학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서울 사당동 희망감리교회에서 도시빈민목회를 시작으로 경천교회(인천), 평안교회(포천)를 담임으로 섬김. 2004년 오래 투병한 아내와 사별. 자녀는 아들과 결혼한 딸이 있음.
〈한국 산문〉에 수필〈빈자리〉로 등단. 저서: 〈옆구리 뚫린 아담의 기쁨〉(1999년),〈예수 믿지 않는 기독교인〉(2011년),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2014년)이 있다.
* 아래의 글은 '옆구리 뚫린 아담의 기쁨'(예향. 195-211쪽) 참조
【"여보, 당신 어쩐 일이에요?" 밥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던 아내가 밥 먹다 말고, 놀란 눈으로 나에게 묻는 말이었다.
"왜?"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든 채 아내에게 되물었다.
"당신 벌써 밥 두 그릇째에요. 밥상 갖다 놓으면 밥알을 세는 사람이 이상도 하네." "그런가?!" 그제서야 나도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이상하게 달라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밥맛을 되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날 아침부터가 아니라 이미 그 전날부터 입맛이 돌아 음식을 맛있게 먹은 사실이 마치 비디오 필름을 되돌려 보는 듯이 되살아났다.
그 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 가는 번개 같은 영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능력의 증언>책이었다. 내주하신 성령께서 그 이유가 그 책에 실린 믿음의 글들을 읽은 데 있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신 것이다. 믿음 안에서 치유 받은 글들을 보면서 나도 믿음을 얻어 치유 받는 조짐이 일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병자들을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신 적이 있다 (눅 17:19). 이런 경험을 한 뒤 나에게는 현신애 권사의 복음선교회를 찾아가서 기도를 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치유 간증 책을 집에서 읽으면서부터 식욕이 회복되는 증상은 병 치유의 신호탄이었는데도 영적으로 우둔했던 나는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나에게는 또 다른 두드러진 현상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헛구역질이었다. 헛구역질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참을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그때마다 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무엇인가 토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헛구역질 증세가 처음 생겼을 때 나는 나의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음식을 잘 못 먹은 것도 없었고 간도 정상이었다.
신유와 축사(귀신을 내쫓는 일) 사역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프랭크 D. 하몬드 목사는 그의 저서 <가정의 축복을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라>에서 축사의 사역을 행하는 동안에 목격할 수 있는 모습 혹은 증상으로 팔다리의 경련, 구역질, 울부짖음, 웃음, 비명, 한숨, 으르렁거림, 트림, 하품 등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병이 마귀(귀신)와 같은 영적 존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는가가 궁금하여 나는 이와 관련이 있는 말씀을 찾아보았다.
성경은 놀랍게도 육체의 병과 귀신과의 관계성을 많이 언급하고 있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을 소개하면서 축사와 병치유의 밀접한 관계성을 말하고 있었다(마8: 16-17, 눅4:40-41, 막9장).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셨고 말씀으로 병을 고치셨다.
마가복음 9장에는 벙어리 아이가 예수님께 나아와 치료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예수님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벙어리 증상을 없애고 있었다. 물론 모든 병이 귀신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그 관련성이 충분히 있다고 여겨지는 증상(현상)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도 받으러 다니는 동안에도 옆구리의 피고름은 여전히 줄기차게 나오고 있었다. 하루에 다섯 차례 이상 어린아이 기저귀용 패드를 여전히 갈아줘야만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고름 썩은 냄새가 코를 들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밤에 잘 동안 피고름이 고였다가 아침에 일어날 때면 이부자리 위로 주루룩 새어 나오기도 했다.
병 치유를 위해 그동안 주로 나 혼자 혹은 집에서 기도해 왔지만 신유은사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용산에 있는 그 선교회를 틈이 날 때마다 지속적으로 찾았다.
꾸준히 기도를 받으면서 살펴보았지만 현 권사의 사역에서 특별히 비성경적이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거나 자랑을 하거나 헌금을 강요하는 일도 없었다. 목회자를 존경하며 일하는 모습도 안정감이 있었다. 그녀는 집회에서 1부 순서로 꼭 예배를 드렸고, 그 예배의 설교는 꼭 목회자를 초청하여 맡겼다. 기도할 때도 목사님들이 흔히 강단에서 하는 "축원합니다!" 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치유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간혹 소금물로 반죽을 한 밀가루 떡을 환부에 붙여주는 것이 좀 어색했다. 그러나 그것을 팔거나 그것에 무슨 신비한 효험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붙이면서 계속 믿음을 갖고 기도할 것을 강조했다.
밀가루 떡 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예수님이 한 소경을 치료하실 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라준 일을 기억했다 (요 9장). 예수님이 눈에 발라준 진흙은 믿음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현 권사는 신유은사를 받은 이래 40여 년 그 은사를 잃지 않고 그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고 출석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충현교회였다. 한동안 지속된 나의 구역질 증상은 얼마 뒤 사라졌다. 그러나 식욕은 점점 더 되살아났다.
그런데 기도를 받던 어느 날, 현 권사의 손이 나의 오른쪽 옆구리에 우연히(?) 닿았다. 약간 야윈 것 외에 겉보기에 멀쩡한 나의 외모를 보고 그녀는 나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 나는 그동안 기도를 받으면서 신분을 밝힌 적도 말을 한 적도 없었다.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기도를 받는 동안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려고 했다. 치유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유는 그분 홀로 행하시는 일이다. 은사자는 도구일 뿐이다. 여기서 나의 신분 같은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벌거숭이 빈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기도를 받았었다. 나는 옆구리를 보여줬다. 뚫린 옆구리에 호스를 박고 있는 모습을 본 현 권사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전도삽니다." 아직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이었다.
"네, 병원에서는 무슨 병이라고 그래요?"
"농흉이에요. 결핵성 늑막염이 악화돼서 이렇게 됐어요."
"수술은 언제 했지요?" "4년 전에요."
그녀는 지친 내 얼굴에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본 듯했다.
불치의 병이라고 하는 생각을 헤아리고 있는 듯 했다. 수많은 환자들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 온 그녀는 환자의 마음속도 들여다보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4년이 아니라 40년이 지났어도 주님이 하시면 능히 고쳐요. 믿음을 가지세요."
그녀는 나의 옆구리에 박혀 있는 호스를 빼고는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전도사님, 다음 주 월요일 이 호스 뽑아 버립시다."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 벌어진데 내가 놀라 멈칫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아내를 쳐다보고는 웃으며 묻는다.
"색시에요?" "네."
아내가 대답을 하며 인사를 하자 안고 있는 애기는 딸이냐고 물으며 아내와 딸을 번갈아 가며 세 번 치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현 권사는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믿으면, 믿는 대로, 될지어다!"
월요일, 그러니까 현 권사가 호스를 뽑기로 약속한 날, 나는 사람들이 기도 받으러 나가는 시간에 아직 자리에 앉아 준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말씀을 따라 다시 한 번 생각나는 죄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고백했다. 그리고 한 번만 살려 달라고 간절히 또 구했다. 그 순간 눈물이 나도 모르게 왈칵 쏟아졌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속에는 지난날들이 회상되면서 하나님이 발걸음마다 나를 크신 능력으로 붙들어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는 뜨거운 감동이 복 바쳐 올랐다. 동시에 기도하고 있는 나를 하나님이 부드럽게 감싸 안으시는 느낌을 받았다. 내 입에서는 복음 성가가 조용히 흘러 나왔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힘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아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흐르네
그런데 이때 환자들에게 기도를 해주던 현 권사가 기도를 중단한 뒤 마이크를 들고 나를 찾았다. 그녀는 환자들을 위해 장시간 기도해 주는 중간 중간 고침 받은 사람의 간증을 대변하거나 혹은 갑자기 어떤 환자를 지명하여 불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자기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들을 했는데 그 날은 특히 그녀 특유의 북한 사투리로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다. "세상에, 여러분 기가 막히는 얘기를 다 듣네요......하였튼 이 현 권사는 일 년에 열두 번도 더 죽어요. 요새는 또 이 현 권사가 죽어서 천국엘 갔는데 하나님이 '난 너를 모른다'고 해서 제가 다시 내려왔다는 악 소문이 퍼졌대요. 글쎄. 하여튼 오래 살고 볼 일 이야요. 그래서 내가 오래 사는가 봐요. 제가 천국에서 '주님 저를 왜 모르셔요'라고 물었더니 '너는 땅에서 사는 동안 영광을 다 받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해 제가 '그러면 한국의 큰 교회 조ㅇㅇ 목사님과 부흥사 이ㅇㅇ 목사는 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들도 나는 모른다' 라고 하셨답니다. 나도 모르는 얘기가 장안에 퍼졌다니 재미있네요. 재미있어! 제가 80살이 다 되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주님 주신 은사 갖고 일하니까 사탄이 별의별 장난을 다해요."
"여러분, 그 전도사님 오늘 오셨지요? 어디 계세요? 옆구리에 호스 박은 전도사님 오셨으면 앞으로 나오세요."
헛소문 얘기를 듣는데 열중하고 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나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합심기도를 부탁했다. "주여....." 낮으면서도 간절한 목소리로 그녀는 주님을 불렀다. 주님을 부르며 나의 옆구리에 박힌 호스를 조심스럽게 뽑았다. 뽑은 호스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비벼 밀가루 반죽을 했다. 다음엔 그 밀가루 떡으로 내 옆구리에 뚫린 구멍을 틀어막고는 또 넓적하게 붙여 놓았다. 그녀의 손은 온갖 병자를 다 만진 손이었다. 그러다 말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도사님, 수지 맞았네! 야~ 수지 맞았다!"
이 말은 주님의 치료의 능력이 자기의 손을 통하여 나가는 것을 느꼈다는 의미라고 옆에서 돕는 한 집사가 나중에 설명해 줬다. 끝으로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가슴과 머리와 등을 치는 기도를 하고 마쳤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믿으면, 믿는 대로 될지어다!"
옆구리의 호스를 뽑고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을 먹고 난 뒤 나는 몸이 너무 노곤하여 방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물론 구멍이 뚫린 쪽이 위로 행했다. 그런데 잠(그 상태가 잠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상태인지도 잘 모르겠다)이 들락 말락 하는 순간 참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였다.
내가 방 천장으로 뜨는 것이었다. 동시에 방에는 또 다른 내가 옆으로 누운 채로 그냥 있었다. 마치 내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 나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울은 자기가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었던 신비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때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말한 것이 혹시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나는 했다.
방 천장까지 떠올라간 내가 방바닥에 옆으로 누워 있는 또 다른 나를 쳐다보고 있는 순간, 내 옆구리에서는 뚫린 구멍으로 흉측한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벌레는 까만 색깔을 하고 있었다. 길이는 젓가락 정도만 했다. 굵기는 어른 검지손가락 굵기만 했다. 몸에는 마치 지네처럼 잔 발가락들이 무수히 많이 나 있었다. 처음에는 작게 보이던 벌레가 점점 갈수록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너무 징그럽고 흉측스러워 나는 쳐다보기조차도 힘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벌레는 그 구멍에서 계속 기어 나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흉측스러운 벌레가 나의 옆구리에서 빠져나가는 환상을 본 이튿날부터 내 몸에는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뒤따랐다. 옆구리에서 나오는 피고름이 줄기 시작한 것이다. 피고름은 눈에 띠게 줄어갔다. 하루에 보통 다섯 번씩 갈던 패드를 날이 가면서 네 번, 세 번으로 점점 줄여 갈게 되었다. 횟수가 줄면서 나오는 피고름의 양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피고름의 농도도 묽어졌다.
날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을 내 몸으로 했다. 피고름이 줄면서 동시에 일어난 또 다른 현상은 옆구리의 구멍이 새살이 나오면서 점점 좁아지는 것이었다. 새 살이 서서히 자라 나오는 것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으나 이전과 달리 그때 특이한 현상은 피고름이 주는 것과 보조를 맞춰 구멍도 점점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피고름의 양이 줄면서 농도도 묽어지더니 4-5개월 정도 되었을 때는 아주 좁아진 실 구멍을 통해 맑은 물과 같은 분비물만 나왔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루에 화장지 한 장 정도만 붙여 놓아도 될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다가 피고름이 완전히 멈춘 것은 호스를 뽑고 기도한 지 꼭 6개월 만이었다. 피고름이 완전히 멈추던 날, 그 구멍도 완전히 막혔다. 피고름의 샘이 완전히 마르면서 동시에 피고름을 받아내던 구멍도 닫힌 것이다. 피고름을 받아 내기 시작한지 5년만의 일이었다.
여호와는 과연 치료의 하나님이셨다(출 15:26).
과연 나사렛 예수 이름에는 권세가 있었다. 예수의 이름이 흉악한 병의 결박을 깨뜨린 것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병의 세력을 단번에 날려 버렸다. 병의 포로에서 자유를, 그 눌림에서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내 속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신 것이다(요일 3:8).
"내 이름으로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고 약속하신 주님의 약속이 내 몸에서 실현된 것이다. 순전히 예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였다.
피고름이 완전히 마른 뒤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목욕탕 가서 목욕을 했다. 비록 옆구리에 흉터는 있었지만 그 감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내 영혼은 기뻐 뛰었다. 하늘을 날듯이 우리는 기뻐했다. 아내와 나는 405장 찬송을 부르고, 부르고 또 불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생명은 내 것인데 네가 왜 염려하느냐? 염려하는 것도 죄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바 있는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올렸다.
피고름이 마른 얼마 뒤 나는 그동안 치료를 받아온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X-ray를 찍는 등 여러 가지 검진을 마친 뒤 담당 의사는 감탄을 하였다. "흠, 신기하네." 나의 X-ray 사진 상에 달걀만한 크기의 빈 주머니 같은 공간이 오른쪽 옆구리 부분에 선명히 찍혀 있는 것을 나의 눈으로도 확인 할 수 있었다. 한참 동안 필름을 들여다보던 의사는 농담이 섞인 말을 하였다. "우리 기술도 괜찮은데, 이만 하면.... 우리가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꼭 그렇게 되었네!"
나는 의사 앞에서 기회를 놓칠세라, 웃으면서 하나님의 행하신 큰일을 증거 했다. "하나님이 고치셨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고침 받은 이 병 때문에 더 이상 병원을 찾은 일이 이제까지 없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영원한 뜻, 권능, 아름다움, 구원,
치유, 회복, 심판 등으로 경험 된다
(단 2:19-23; 시 90:16; 신 4:35-40).
*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고
땅이여 여호와의 입의 말을 들으라.
그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그의 말은 맺히는 이슬,
연한 풀 위에 단비로다(신 32:1).
* 여호와의 명을 받는다는 것!
천지의 대 주재(主宰)가 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명을 받아 산다는 것!
가장 수준 있고 품위 있는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功勞)를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가 보내 주신,
우리 심령에 들어와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하심을 믿는 것이다(대하2:12. 엡2:9. 롬4:5).
*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 하나님께서 인생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보라.
특별히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볼 때
그 일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시 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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