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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같은 인생
* 이 글을 마음에 담아 세월호 침몰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희생자 모든 분들의 영전에 바치오며,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인생 참 어렵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문제 하나 가까스로 풀면 또 다른 문제가 밀려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다가온다.
진도 앞바다는 지금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거센 물살과 넘실대는 파도에 침몰한 세월호 배 밑창은 보일듯 말듯 하고, 뿌연 잿빛 하늘에 빗줄기는 잦아들 줄 모르는데 혹시나 선체(船體)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하여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생명줄에 의지한 채 거친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잠수부들.....
이는 마치 수수께끼 같은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것아 안쓰럽기 그지없다. 476명이라는 그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모른 채 공동운명체로 엮여져 한 배를 타고, 그 가운데 174명만이 겨우 목숨을 건지고 나머지는 사망 혹은 실종되었으니 이것이 수수께끼 인생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특히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가운데 겨우 63명만이 살아남았으니 이런 참사를 그 누구인들 예측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생사에 관한 한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뉜가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여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닌가 한다.
지금 목격하고 있는 이와 같은 일들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늘 있어왔던 일들이고, 지금도 지구 어디선가는 일어나고 있고, 나 자신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리 새삼스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운 좋게 생존한 학생들은 놀란 가슴과 심한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는데, 심리치료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구조된 단원고 교감 강 모(52)씨가 제자들을 잃은 현실을 자책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그가 남긴 유서를 보면 정말 인생 수수께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
내 몸뚱이를 불살라 침몰 지역에 뿌려 달라.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
오! 심히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자살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고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목숨은 그런 식으로 다루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학생, 교사와 함께 인솔 책임자로 수학 여행길에 오른 교감 선생님은 구조된 뒤 네티즌들과 일부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항의와 질타를 받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구조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단원고 교사들은 믿을 수 없다며 울었고, 실종 학생 부모들도 흐느꼈다.
성경은 세상은 이미 ‘죄 아래 있다’고 선언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롬3:9).
뿐만 아니라 전도서 기자는 더욱 신랄하게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9:3).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들이 악한 것이고,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는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신 앞에 선 고독한 단독자(單獨者)’로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애초에 처음부터 하나님 품을 떠나서 존재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연약에 둘러싸여 있고,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병’(케에르 케고르:덴마크의 유신론적 철학자)을 운명적으로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말하자면 연약에 싸여있는 인간 실존 그 자체가 포괄적인 의미의 ‘죄(罪)’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엄연한 이 사실을 싫든 좋든 받아들여야만 한다.
예를 들면 어느 누가 태어날 때부터 기가 막힌 중증 장애를 갖고 출생한다면 아무리 억울해도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여기에는 그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고, 마땅한 해결책도 없다.
있는 그대로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한다.
이것이 죄 된 인생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나님 품을 떠나 존재하는 세상에는 무엇 하나 믿을 만한 것이 없고, 정결한 것도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는 말이다.
다 흘러가고 머지않아 잊혀지고 썩어 소멸되고 사라지는 것들 뿐 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조차도 불완전한 한계적인 사랑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죄가 있는 세상을 천국으로 착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하나님이 내 삶에 오시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절망 그 자체인 것이고, 미쳐 돌아버리고 말 것 같은 허무함(Nihill) 그 자체인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긍휼하신 하나님. 내게 오셔서 나를 이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하여 주소서.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니 나를 살려주소서.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참담한 죽음을 피할 길 없어 피어보지도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죽을지 모르나 내 영혼은 살려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 수 있도록 나를 살려주소서.
지금 죽는 이 순간부터 펼쳐지는 천국에서의 삶이야말로 참된 영원한 삶이라는 사실을 믿사오니 더 이상 억울한 눈물과 고통과 죽음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의지할 데 없는 불쌍한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받아 주소서.
꿈결 같은 이 세상 모든 것 다 지나가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내게 남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 이옵고, 하나님만이 나의 절대자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소망이시오니, 제발 나를 버리지 마시고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라는 뜻이다.
이것이 인간이요 인간이 살아가는 수수께끼 같은 삶이다.
그리고 이 세상 삶이 끝나는 죽음은 사람이 가는 길을 가장 정직하고 겸손하게 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마음을 낮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큰일 날 사람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수수께끼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사람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어째서 하나님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물체를 보도록 만들었을까 ?’
이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서 밝은 것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들의 하루 개념은 우리와 정반대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
우리는 해가 뜨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하루가 마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떠오르면서 하루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왜 그럴까?
인생은 어두운 고난과 시련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밝은 빛을 볼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빛 되신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죽을 운명에 있는 인생들에게 무지개 언약의 증표를 은혜로 주신 자비하신 하나님이시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메시아니즘을 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말씀의 모든 결론도 ‘메시아의 오심’, 즉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다)’에 있다(계22:20).
히브리어의 ‘메시아’는 희랍어의‘그리스도’와 같은 말인데, 우리말로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구세주(救世主)’라는 뜻이다.
성경 말씀은 인간이 절망을 경험하면 할수록, 역사의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악한 세력이 맹위를 떨치면 떨칠수록 메시야를 기다리고 사모했다.
메시아가 속히 오실 것을 노래했고, 메시아의 대망(大望)으로만 악을 심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올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와야만 인간의 모든 꿈이 궁극적으로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메시아는 결국 하나님 자신을 뜻하는 것인데, 메시아는 그야말로 희망의 이름이고, 온갖 저주와 죽음까지도 ‘이김’에 삼켜짐을 당하는 승리의 이름, 곧 부활의 이름인 것이다(고전15:53-57).
하나님은 그 언제든지 소망의 하나님이시다(롬15:13).
내게 하나님만 계시면 지금은 설령 패배의 모습일지라도 최후의 승리는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나 더럽고 추악해서 내가 이 땅에서 설령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천국에 초대해서라도 그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하실 것이다. 이는 분명한 진리로서 사실 그 자체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런 믿음의 마음을 갖고 생활하니까 기나 긴 고난의 세월도 답답하고 지루하고 힘들지언정 능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풀어야 할 수수께끼 앞에 섰을 때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고 위로받고 힘을 얻어 달려갈 길을 다 완주하신 후 영광의 주님을 뵐 수 있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죄란 하나님과 따로 떨어져 있는 모든 상태
곧 연약에 싸여있는 인간실존 그 자체를 말함이니
구원은 누구에게나 절실하다(히7:25-26.히5:7-9).
* 만일 세상에 죄가 없다면
하나님 영광에 온전히 참예하게 될 것이다.
온갖 아름다움, 진, 선, 미
그리고 그 마지막을 영생이라 말씀하신다(시133:3. 요일5:11).
* 모든 피조물은 전혀 새로운 구원
곧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탄식으로 바라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모든 분들의 죽음을 애도하며(롬8:19-21).
* 세계와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마침내는 그릇된다(신4:39-40 신31:17).
*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때,
곧 여호와의 날이 이르면
소경의 눈은 밝을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고 앉은뱅이는 일어나고
고통과 슬픔과 눈물 대신에 영영한 하나님의 위로와
희락의 화관으로 씌워주실 것이다(사35:5-6. 계21:1-4).
*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시며
인간의 이론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신다.
그러나 인간의 양심을 침해하지는 않으신다(삼상2:2-7).
* 현실과 삶 속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의 양면성이다(눅17:21.대하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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