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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막힌 심장혈관을 새 혈관으로 바꾸어주시다.
2013년 12월 1일, 또다시 재발한 심장병은 불가피하게 3차 심장수술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부담되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목사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는데 있다.
매일같이 건강하기를 소원하고 기도하는데 어째서 1 년에 두 번씩이나 심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 하는 자괴감(自塊感)이 저절로 들고, 혹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정말 남 보기가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괴로운 것이다. 이와 같은 감정의 변화는 이런 경우를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울 것이다.
수술 전 한 주간은 시도 때도 없이 심장에 통증이 왔는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워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다. 한 순간 두 번 이나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시야가 흐려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근심이 더 커졌다. 잠시 조금 후에 시력이 천천히 돌아왔는데 여전히 눈이 침침하여 운전을 멈추기까지 했다.
그날 오후, 가평에 우리 집을 짓고 계시는 오 집사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이 얘기를 하니까 그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님! 병원 안 가고 왜 여기 계십니까? 죽은 다음에 이 전원주택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내가 목사님을 위하여 이런 아름다운 집을 지어드리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우선순위입니까? 이렇게 어리석고 무책임하면 안 되지요. 나 일 안 해도 좋고 못해도 좋습니다. 다 집어 치우겠습니다…….” 하면서 일하다 말고 만사 제쳐놓고 자동차 키를 뺏어 강제로 세브란스 응급실로 차를 몰았다.
오 집사님은 미국에서 두 차례나 심장에 좋다는 셀레늄, 카퍼, 오메가3를 사다 주시면서 지대한 관심으로 나의 건강을 챙겨주셨고, 금번에는 마치 자기 살 집 짓듯 내가 살 집을 온 힘과 정성으로 지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던 참이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나는 집중적인 검사에 들어갔다. 혈압 뿐 만 아니라 간, 콩팥 수치도 기준치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심장박동 수치는 60-80은 되어야 하는데 30에서 40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심장이 온몸에 피를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니까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던 것이고, 한계치를 넘어서니까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리고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김병극 심장내과 주치의 선생님은 나와 함께 수술 영상을 지켜보면서 나의 심장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심장이 너덜너덜 합니다. 심장이 전반적으로 나쁩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굵은 관상 대동맥이 3개 있는데 좌측의 것은 아예 막혀서 폐쇄되었습니다. 가슴을 열고 다리 심줄을 떼어다 붙이는 심장 우회수술도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우측의 것 두 개 모두 막혀서 스턴트를 박아 혈관 확장시켜 놓았는데, 99년도에 시술했던 부위가 또 다시 막혀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입니다. 3차 수술에서는 이 부분을 다시 뚫을 예정입니다. 수많은 잔가지 혈관들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죽었고, 폐쇄된 쪽의 심장근육은 살아있는 것조차 느리게 움직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온전치 못한 두 개로 세 개 역할을 감당해야 하니 수술을 해도 가슴이 깨끗지 않고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험난한 치료가 예상됩니다. 절대 안정을 취하시고 극히 조심하시며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이 말은 세상적인 방법의 한계를 거듭 확인한 것이어서 한편으론 낙심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면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실 수 있는 능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불가능의 가능이시니 어찌되었든지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가짐을 그렇게 해야만 심령의 평정을 잃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살든지 죽던지 상관없이 다 좋은 최선의 것이라는 믿음은 정말 귀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면 그 누가 하나님 사랑에서 끊어놓을 수 있겠는가. 설령 내가 지금 죽더라도 감사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받으시어 천국으로 인도하실 터이니 무엇이 두려워 떨 것인가 하는 믿음은 세상도 이기고 마귀도 이기는 믿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믿음 안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 아니겠는가 하고 자문자답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무슨 속박에서도 자유 한 마음을 갖으리라 결심했다.
나는 수시로 이렇게 기도하기를 즐겨한다.
“하나님! 제게 주님의 뜻과 섭리가 계시다면 이를 이루시기까지 함께 하시고 살려주소서. 심장을 통째로 새 심장으로 바꾸어주십시오.
그러면 살아계신 주님을 힘 있게 간증하며 하나님 살아계심을 나타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앞이 막히고 옆이 막히고 밑이 막히고 동서남북이 막힐지라도 절망하지 않을 것은 위에 계신 영광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지 않겠습니까.”
시편을 쓴 다윗도 똑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27:4-14 요약).
드디어 3차 수술이 시작되었다.
심혈관 확장 시술은 최첨단 현대 의학 장비가 만들어져서 가능해진 획기적인 방법으로서 국부마취 상태에서 카메라를 장착한 관이 대동맥을 타고 심장부위까지 들어가면서 혈관 상태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조영제를 뿌려주면서 촬영을 하고 이를 토대로 막힌 혈관 부위에 ‘스턴트’를 박아 피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통로를 뚫어주는 시술이다. 99년도에 시술한 부위가 또다시 막혔지만 무사히 성공적으로 뚫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의술의 결과로서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 평범한 것이다.
그런데 수술을 진행하던 김병극 주치의 선생님이 오셔서 자기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수술을 진행하는 컴퓨터 화면에는 2013년 2월의 심장 화면과 지금 3차로 시술하고 있는 심장화면을 한눈에 비교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목사님. 재미있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지난번 1999년 2월에 막혔던 혈관을 뚫은 적이 있는데, 스턴트를 박은 혈관 바로 그 위에 있는 종전의 혈관을 잘 보시지요. 보이다 안보이다 하는 이 혈관은 보시는 바와 같이 막힌 혈관이라 너무나도 가늘고 길어 시술할 수도 없는 혈관인데, 지금 보고 있는 이 혈관이 바로 지금 수술하고 있는 심장에 있는 혈관 가운데 하나인데 어찌된 일인지 굵고 길게 뻥 뚫린 건강한 혈관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저 혈관이 지금 이렇게 굵고 뻥 뚫린 혈관으로 변모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바꾸어질 수 있는지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이것이 자연치유 된 것이라면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쩌면 스턴트 수술로 혈류가 원활하게 되니까 지금 보고 있는 이 막힌 가늘고 긴 혈관에도 영향을 주어서 혈관 벽에 붙어있던 더럽고 탁한 찌꺼기 피를 밀어내고, 그 결과로 지금 이렇게 굵고 뻥 뚫린 새 혈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혈관이 압박을 받아 심장 고통이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재미있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심장혈관이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목사님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히 갖으시고 몸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 (2013년 12월 1일 세브란스 영상자료 첨부)
주치의 선생님은 의사로서 말할 수 있는 정당한 의학적 소견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기이한 신유(神癒)와 이적(異蹟)을 나타내시는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병든 내 심장을 어루만져 고쳐 살려주신 것이다.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사 내 육체까지도 신유(神癒)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마다 일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장수술 현장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겨났네요”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을 우리 가족도 들었고 나도 들었지만 처음에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고통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수술을 마치기도 전에 지금 당장 심장이 이전보다 좋아졌다니 이건 또 무엇인가? 좋아졌다면 얼마나 어떻게 좋아졌다는 것일까? 하는 궁금한 마음으로 퇴원을 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나는 지금 15년 만에 잃어버린 가슴의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조금만 무리해도 가슴이 편치 않고 무거운 부담감을 갖았었는데 지금은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 같이 평온하다. 조금만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늘 왼쪽 팔이 무겁고 저렸었는데 그런 증세도 감쪽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빨리 걷거나 눈이라도 오면 쓸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어려웠다.
그런 내가 새로 지은 전원주택에 3.5톤 분량의 나무들을 나 혼자서 삽과 곡갱이로 다 심었고, 채마밭을 뒤집어엎어 푸른 채소를 가꾸고 있다. 이 모든 일을 끝마칠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고,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니며 하루 종일 신나게 일을 했다. 팔 다리에 알이 배고 피곤해서 입안이 헐어 밥 먹기가 힘들지언정 가슴은 멀쩡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1시간 이상 7Km를 걷고 뛰고 있다. 이런 생활 자체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당면한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을 만나도 크게 걱정되지가 않는다. 어찌되었든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해결해 주시리라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담대한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3차 심혈관 수술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구원의 하나님 아버지’ 이심을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병든 몸에서 자유를 얻은 이 구원 사건은 하나님 살아서 역사 하시는 이적(異蹟)과 기사(奇事)와 표적(標的)이 아닐 수 없다(요4:48).
이는 몸의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 그 이상을 뜻한다.
하나님의 빛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은혜로 받게 되고, 몸으로 체험하게 되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한 입 가득 베어 문 레마’(말숨 산문집 제1권 제목)의 확증이요, 최고의 기쁨이자 감사 감격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 성경 헬라어 원문에 로고스(logos)와 레마(rhema)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고스와 레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에서의 ‘말씀’은 ‘로고스’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오시기 때문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로고스는 객관적인 하나님 그 자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영적 원리 같은 것,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다.
반면에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내 영혼에 부딪쳐왔을 때, 그 어떤 영적 감화 감동이 되어 믿음이 되고, 나의 영혼 내면에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때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말씀을 들었을 때 심령이 뜨거워지면서 죄를 통회자복하게 되고,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천지개벽을 하듯 변화와 능력을 경험하게 하는 말씀으로 다가올 때 그 말씀을 ‘레마’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 그 자체를 만나는 것과 똑같은 일이 생겨난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주시고 만나주시고 무엇인가를 도와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보게 되지 않겠는가?
살든지 죽던지, 그 어떤 일이 내 바람대로 되든지 안 되던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정녕 내게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최상의 완결(完結)아니겠는가?
믿음의 세계란 당장 눈앞에서 되어지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 너머의 세계, 이를테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까지 바라보면서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 아니겠는가.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役事) 하신다는 말은 바로 그런 뜻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은 천사가 주는 말씀을 받아먹었고, 에스겔 선지자도 말씀을 먹었다. 천사가 전해 준 두루마리에 쓰여진 말씀을 먹고 소화하여 자기 말씀이 되도록 했던 것이다(겔3:1-3,계10:5-11).
사도 바울도 ‘내 복음’을 전파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소화하여 자기 말씀이 되어 진 체득된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다(갈1:11).
음식물인 밥을 ‘로고스’로 비유한다면 그 밥을 내가 먹고 나의 피와 살이 되어 기력(氣力)을 회복시킨다면 ‘레마’로서의 하나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눈앞에 있는 밥을 보고도 먹지 않는다면 굶어서 죽을 수밖에 없다. 밥이 없어 죽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지 않아서 죽는 것이다.
똑같은 이치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등지기만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 영혼에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는 ‘로고스’의 말씀이란 존재할지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그저 있는 좋은 말’에 불과할 따름이다.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공자나 맹자의 ‘좋은 말’과 전혀 다른 것은 바로 거기 있다. 죽은 자도 살리는 권세 있는 하늘에서 온 생명의 말씀이 어떻게 윤리도덕적인 ‘좋은 말’과 수준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말’과 ‘말씀’은 그 개념이 하늘과 땅처럼 수준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로고스의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는다면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이 분명 살아 계실지라도 ‘나를 구원하시는 나의 하나님’ 으로는 경험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불러내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4:17).
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하나님은 벌써 죽어서 썩어 없어져야했을 나를 두 번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선(死線)을 넘게 하셨다. 내게 오신 그 말씀은 나를 살려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셨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살아남아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며 나의 전부이신 나의 주님’ 이라고 증언하는 사명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이 말씀을 체험하고 오늘의 내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쓴 ‘말숨’산문집(7권)은 그 말씀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특별한 책이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체득한 말씀을 ‘말숨’으로 표현했다. 이는 사람이 전파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숨결, 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히브리어 '루앗하')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나의 간증을 들은 어떤 자매 선생님은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정말 감사할 일이네요. 새롭게 온전히 치유해 주십사고 기도했는데.... 아멘”.
또 어떤 목사님은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하구요. 이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놀랍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줄 믿습니다.
빠른 회복을 기도합니다.” 라는 격려 문자를 보내 주셨다.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
언제 어느 순간에 왜 어떻게 그런 일들이 생겨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결론을 아는 것이다. 살아계신 자비하신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나를 특별히 만져주셨고 고쳐주셨고 살려 주셨다는 그 결론 말이다.
이것은 궁극적인 미래에 있을 천국에서의 부활영생 구원을 내가 체험했다는 사실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가능한 일을 하면 주님은 나를 위하여 불가능한 일을 해 주신다(창22:16-18)는 영적인 비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도 체험하였다(롬8:28).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살려주셨구나.
구원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천국의 소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봄이 오면 마른 잎 되살아나듯이 죽은 자의 부활도 하나님이 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겠지.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어떤 사인이나 징후를 오관으로 느끼거나 알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만져주시면 무슨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겠지..... 하고 확증하여 믿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믿음은 이런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믿음만큼 위험하고 손해나는 거짓된 믿음은 없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면서 방황하고 있다. 그것은 관념체계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어린아이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읽고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그대로 받기만 하면 그 즉시 믿음이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 보잘 것 없는 나로 하여금 은혜 주셔서 이런 ‘말숨’ 글을 쓰게 하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고 나타내게 하시려고 뜻하셨다고 나는 믿는다. 이는 나의 특별한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내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 내 힘으로는 하루 밥 세끼 먹기도 버겁고 실수투성이에다가 부끄러운 자화상(自畵像)들만 생각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보면 아무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은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셨고,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義)의 길로 인도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분에 넘치는 너무도 후한 대접을 해주셨다. 방 한 칸으로 신혼을 차리고 시작한 결혼생활 동안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를 15번이나 해야 했는데 지금은 꿈에나 그릴 수 있는 지역에 터를 잡고 분에 넘치는 만족스러운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이는 주님께서 환경을 열어 주시고, 돕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일이 되어 지도록 도와주셔서 가능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순간 갑자기 되어 진 일들이다. 지난 15년 동안 건강을 잃어버리고 고통 속에 살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을 되찾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그 일생에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시니 내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복된 신앙 고백적인 말씀이 되어 질 수 있기를 주 예수님 피 흘리신 공로 의지하여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고,
하나님 찬양이 땅에 가득하다.
주는 밝은 빛과 같다.
주의 손에서 광선이 나온다.
주께서 광선속에 그 능력을 감추신다(합 3:3-4).
* 하나님은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을 행하시는 분이다.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놀라운 기사와 이적이다(시 136:4).
*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 입은 자,
사랑을 받은 자, 기뻐하심을 입은 자,
택정함을 받은 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마 17:5; 눅 1:28-30).
* 지존무상하시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 하시는 여호와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신다.
그는 마음이 겸손한 자,
통회하는 자와 함께 거하신다(사 57:15; 시 111:9; 사 33:5-6).
*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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